2000년 5월 2일 화요일

내가 처음 담배를 피운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인, 1991년 이맘 때이다.
당시에는 담배를 피우는 것이 일종의 유행이었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대학생으로서 큰 부담이 없는 행동으로 통했다.
처음 접한 담배는 88라이트이다. 당시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연기가 입에서만 맴도는 입담배를 피웠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일명 속담배를 피웠고, 그것은 곧 대수롭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피게된 담배는 88라이트가 아닌 한라산이었다. 88라이트보다 조금 더 길고 쵸코렛 맛이 난다는 것이 초보흡연자로서의 선택 이유다. 88라이트는 그때 600원 했으며, 한라산은 100원이 비싼 700원이었다.
수 개월후 나는 담배를 끊기보다는 끽연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친구들에게는 이쁜 애인만 있으면 담배를 끊는다는 순진한 말을 하기도 했다.
올해로서 흡연 딱 10년이다. 피기 시작한 달도 비슷해 그야말로 딱 10년인 셈이다.
지금 나는 담배를 끊는다고 핑계를 댄 애인이 아닌 아내가 있다.
그 순진한 말은 말로서 끝나버린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와서 내가 담배를 끊고자 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직장생활을 하는데다가 흡연까지 해 몸이 좋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 주부터 목이 아팠다. 그리고 흡연에 곁들이는 커피와 각종 음료수 때문에 카페인도 많이 섭취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다른 이유는 곧 2세를 가진다는 것이다. 식구가 하나 더 늘지만 벌이는 혼자하는만큼 내가 그리고 가족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이다.
올해 내가 금연을 결심하게 된 것은 내게는 참으로 의미있는 것이다.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자.
우선, 내세우지도 못할 흡연경력이지만, 정확히 10년을 채웠다. 두 번째로 곧 아기가 생긴다는 것에 의미를 두겠다. 다음으로는, 아버지가 나를 낳고 금연을 했었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는 내 건강을 이제 생각해야 할 나이인 30대의 문턱에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겠다. 그리고, 새천년을 맞이했다는 것도 의미를 둘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이지만 나는 이번 금연을 위해 마음가짐을 단단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며칠전 KBS영상사업단에서 펴낸 “술,담배,스트레스, 그 위험한 비밀”이라는 책도 구입해 읽기 시작했으며, 오늘은 니코친패드인 “니코덤”도 한 세트 구입하여 왼쪽 팔에 붙였다.
단순히 담배를 피지 않는다는 것보다 이제는 담배라는 단어를 머리 속에서 지워야 한다는 것도 마음의 준비이다.
계획대로 오늘 단 1대의 담배도 입에 대지 않았다. 니코덤 때문인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금단증세는 어쩔 수 없었다. 머리가 아팠다. 속도 메스꺼웠으며 안절부절 불안한 마음, 그리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졌음을 느꼈다. 이 모든 현상이 개선징조라고 믿지만, 다리에 그리고 온 몸에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에 니코친이라는 마약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음을 새삼 느꼈다.
목의 통증은 없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가래는 계속 생기는 모양이다. 눈이 피곤하고 침침했다. 눈동자가 빨개졌다. 처음 담배의 고통이 이랬더라면 아마 피우지 않았을 것이다.
담배회사, 그들은 죽음을 파는 회사이다.
따라서 우리는 돈을 주고 그 죽음을 사고 있는 우둔한 짓을 하고 있다.
저녁, 아내는 오늘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은 것을 의심하는 것 같다. 손에서 냄새도 맡아본다.